<알림 : 이 글에는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링이 일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영화 「무현 - 두 도시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오늘이 아니고 정확히 일주일 전에... 한 주간의 사색을 거쳐 키보드 앞에 앉았습니다. 대통령이 대통령답지 않은, 아니 대통령이 아닌 것 같은 이 어수선한 세상에, 개봉관 조차 몇 확보하지 못하고 선을 보였던 이 한 전직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국회의원 선거에 조차 떨어지던 시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는, 그 사이에 시간이 흐를 수록 찾는 이들이 더 늘어 박스오피스 역주행 중이라는 기사를 얼마 전에 보았습니다.

   제게 있어서 이 영화는, 2000년 총선이 있은 지 얼마 후에 KBS의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각주:1]에서 당시 노무현 낙선자를 밀착취재해서 방영했던 것을 유심히 보았던 그 오랜 기억을 끄집어 내 준 점에서 의의가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그 프로그램으로 '바보 노무현'은 더 유명해지고, 전국적인 노사모열풍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지요.) 한편으로는, 평행이론적 관점에서 2016년 여수의 '무현'이라는 한 축을 이루는 故 백무현 화백의 이야기는 제가 몰랐던 부분이라 관심을 가지고 봤습니다.

   제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하여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다가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영화가 다루지 않는 내용인데, 2002년 12월 대통령 당선 후의 일성(一聲)으로 당시 노무현 당선인이 "나를 지지한 50%를 위한 정책을 하는 대통령이 아닌 나를 지지하지 않은 50%를 위한 정책도 함께 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때부터 '아니, 그럴려면 우리가 왜 당신을 지지했는가? 당선인이라면 그 지지자를 위하여 지지자가 원하는 정책을 임기내에 관철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 답이 이 영화에 있더군요. 이 영화의 2000년 선거운동 화면 중에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아무도 본인의 선거운동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부산 어떤 시장 부근에서의 고된 일정을 잠시 멈추고 쉬러 들어갔던 다방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가 다방 종업원에게 묻습니다. '이렇게 저(노무현 후보)에게 관심도 안 갖는 지역에서 제가 유세를 해야 할까요?' 그 다방 종업원은 대답하죠. '해야 합니다. 당신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라도, 그들에게 유세하고 그들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왠만한 정치인들은 스쳐 듣거나, 깨닫는 게 있어도 그 결심이 오래 가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노무현은 이 다방 종업원과의 대화에서 크게 깨달음을 얻고 이를 신념화하여 정치인으로서 행보에 끝까지 반영합니다.

   제가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이 여기서 풀렸습니다. '아, 이때 깨닫고 신념화한 내용이 그때의 그 나머지 50% 언급을 낳았구나...' 재임 중 '대북송금 특검' 수용 등의 소위 진보진영을 당혹케 했던 정책으로 인해 진보진영에서도, 보수진영에서도 공격받는 결과를 낳았던 것도, 집권 후기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개헌' 제안이 나오게 된 배경도 이 신념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당시 야당(한나라당)과 여당(열린우리당) 그리고 각 유력 대선후보들까지 노 대통령의 이 제안들을 정치공학적으로 받아들이고 반대했었죠. 심지어는 노대통령 지지자들까지 이해하기 힘들어 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14년 전부터 가져 오던 의문이 이제와서 풀린 겁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과는 별개로, 분명히 이 영화가 '박스오피스 역주행'을 하는 데는 그 객관적인 이유 혹은 시사적인 배경이 있겠지요. 강한 신념과 주관을 가지고서 그것이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중시해야할 '당선' 가능성과 배치된다고 하여도, 또 실제로 낙선했다고 하여도, 유권자(국민)를 탓하지 않고 기꺼이 감내한 2000년 부산에서의 노무현과 2016년 여수에서의 백무현을 대비시켜, 신념없이 이미지만으로 성공가도를 달려오다 사실은 누군가의 '꼭두각시'였음이 드러난 요즘의 어떤 유력 정치인을 떠오르게 합니다. 또, 정치인 본인의 생각과 철학을 연설문에 정확히 반영하면서도 쉽고 간결하게 유권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며 연설문 담당 보좌관들과 고민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에서, 중요한 연설문을 사사로이 외부 비선 실세를 통해 수정하여 엉뚱한 오류와 황당한 비문을 낳았던 요즘의 그 어떤 유력 정치인을 비교하게 합니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2000년의 노무현을 기억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에게 요즘의 그 유력 정치인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의 내용보다는 내용 외적인 부분에 신경이 많이 쓰였던 게 사실입니다. 물론, 저예산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할지라도, 그래도 관객이 있는 엄연한 개봉 영화인데, 같은 내용이라도 관객들이 영화에 조금 더 공감하게 하는 구성을 갖출 수는 없었는지 하는 아쉬움이죠. 안타깝게도 영화 속에 선술집에서, 작업실 회의탁자 등에서 등장하며 토론 내지는 자기 생각을 말씀하시는 분들이 이야기 할 때, 노무현을 떠올리면 먹먹해 지고 감정이 복받쳐 말을 잇기 어려워 하시는 모습들을 컷트 없이 롱테이크로 잡는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사전지식이 충분하지 못한 관객이라면 영화 내용의 전개만으로 그 눈물에 공감하고 함께 눈물 흘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인간 관계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공감능력'이라는 부분을 많이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개인의 '공감하는(해 주는) 능력'을 의미할 텐데... 대중매체라면, 같은 내용이라도 좀 더 짜임새 있게 구성하여 '사람들을 공감시킬 수 있는 능력'이 발휘되었다면 더 좋았겠지요. 이러한 측면에서 이 영화는 조금 아쉽지 않았나 합니다.

   또 하나 든 생각은, 좀 생뚱맞지만, 앞으로 점점 더 노무현을 알지 못하는 요즘 젊은 사람들과 다음 세대에게 노무현의 생애, 정치적 이상과 한계, 집권시의 업적과 과오 등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알려 줄 수 있는 매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8년 2월부터 2008년 2월까지, 국민의 정부가 IMF위기를 수습하고 민주정치의 기초를 닦아, 참여정부에서 찬란하게 꽃을 피운 우리 사회가 그 이후 시나브로 퇴보하다가, 어느 샌가 모르게 붕괴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요즈음, 10여년 전 그 시절은 단지 소주 한 잔 걸치며 눈물짓고 그리워만 할 대상이 아닌, 우리가 회복해야할 가치와 국가 시스템의 기준과 목표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목표를 향해, 혹은 그 목표를 뛰어 넘는 비젼을 향해 우리 다음 세대를 이끌어 줄 새 시대의 지도자를 보는 안목을 우리 다음 세대 유권자들이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1. KBS1TV 「피플 세상속으로」2000년 5월 30일 방영 「끝과 시작 - 낙선정치인 노무현」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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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스 사태’의 현황… 현재 대한민국 정부는 메르스를 통제할 능력이 있는가?


현 상황부터 빠르게 한 번 보자.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인터넷 기사의 최종 수정 시간인 2015년 6월 2일 오전 9시 50분 현재, 사망자 2명, 확진환자는 3차 감염자 포함 25명, (이 기사에는 나오지 않지만 다른 기사는) 자가격리 대상자가 현재 680여명 이상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정부가 뒤늦은 대처로 정부의 통제력 밖에서 지속적인 환자와 사망자가 발생한 점을 고려하면 현재의 관리상태는 반드시 조만간 ‘주의’에서 ‘경계’ 이상으로 격상되어야 한다. 즉, 역학조사의 전면 재 실시를 통해 모든 감염경로를 재 추적하고, 감염 의심자를 포함한 모든 (잠재적)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을 자가 격리가 아닌 시설 격리 조치하여야 이 사태를 ‘현재 수준에서’ 통제할 수 있다.

여기서 이미 대한민국 정부는 이 새로운 전염병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최초 국내 감염자와 2차 감염자에 관련하여 골든 타임을 놓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1차 및 2차 감염자가 감염된 후 접촉한 모든 사람을 파악하는 것이 현 시점에 와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보균자의 전염률이 어쩌고, 잠복기의 전염 불가능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집어 치우자. 지금까지 정부관계자와 관련 전문가 분들이 언론에 나오셔서 하셨던 말씀 중에 맞는 말씀이 얼마나 있었는가? 그런 이야기는 정부와 전문가들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게다가, 위 언론 보도에 의하면 시설 격리 대상자가 1천 명을 넘기게 되면 대한민국 내 의료시설 수준에서 시설 격리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격리 대상자가 1천 명을 넘기면 전수(全數) '강제' 시설 격리 자체를 시행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설이 없어, 시행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의미이다.

현미경으로 관찰된 MERS 바이러스현미경으로 관찰된 MERS 바이러스의 모습 (출처 : 영문판 위키피디아)http://en.wikipedia.org/wiki/Middle_East_respiratory_syndrome_coronavirus

만약, 사태가 정부의 통제력을 벗어나게 되면, 즉 국내에 신규 전염병이 ‘창궐’하는 수준이 되면, 질병관리본부는 그들의 매뉴얼대로 업무를 했는지 여부와 관련 없이, 결과적으로 그들의 핵심 과업이자 존재 이유인 '신규 전염병의 신속하고 적절한 통제 및 확산 방지'라는 직무수행에 완벽하게 실패하는 것이 된다.

자, 대한민국 정부는 현재, 메르스를 통제할 능력이 있는가?


책임소재… 질병관리본부 실무자와 책임자 만의 잘못인가?


만약, 대한민국 정부가 메르스를 통제할 능력을 이미 잃었다면, 혹은 조만간 잃게 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언론이 우선 원인 규명에 나서게 마련이다. 이미 최초 감염자 확진 이후 하루 이틀 사이 2차 감염자가 ‘예상 외로’ 속출하면서, 의료기관과 질병관리본부의 대응에 관하여 문제가 없었는지를 점검하는 언론의 보도가 하나 둘 나오고 있었다. 이 보도들 중 최근의 한 보도를 보면 최초 감염자에 대한 의료진의 메르스 의심이 시작된 5월 17일부터 메르스 확진이 나온 20일까지 질병관리본부 대응이 매우 안일했고, 2일 이상의 골든 타임을 놓침과 동시에 감염루트를 확인할 수 없어서 통제 자체가 불가능한, 현재의 이 엄중한 상황이 만들어 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일차적으로는 질병관리본부 해당 담당자와 그 관리 감독자가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오늘의 이 사태를 예견했을까?…. 언론이 파고 들기 시작하자 5월 21 무렵 해명을 내어 놓은 바 있다. 자신들은 매뉴얼을 준수했으며 환자와 의료진이 제공한 정보가 메르스에 대한 조치를 개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며 제공되지 않은 정보도 있었다는 취지의 해명이었다.

좋다. 공무원의 해명을 그대로 믿어 보자. 여기에서 두 가지의 책임소재 이슈가 더 발생한다. 하나는 국민들이 죽어나가도 매뉴얼 대로만 움직였으면 괜찮은 것인가 하는 공무원의 복지부동 문제이고, 두 번째는 매뉴얼을 충실히 이행했는데도 그 매뉴얼의 목표 달성을 이렇게 철저히 실패한다면, 이런 후진적이며 사후약방문적인, 적절한 대응이 결코 불가능한 매뉴얼을 왜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공무원들의 무사안일, 복지부동이 과연 핵심일까?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늘 그렇듯, 공무원들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을 질타하는 언론의 보도와 여론의 흐름을 읽게 된다. 이번 사태도 그런 경향을 볼 수 있다. 물론 나도 백 번 동의한다. 그리고 이 사태 초기부터 아마 누구나 예상하고 걱정했을 것이다.

그런데, 공무원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은 사실 그들의 본질적 특성이다. 인터넷 댓글들을 보면, 이런 사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을 근거로 모든 공무원들의 연금혜택, 신분보장 등을 박탈해야 한다는 식으로 과격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한 연금혜택과 신분보장을 괜히 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런 보장을 전제로 나랏 일을 시켜야 공무원의 애국심과 봉사정신을 유도하고, 국가가 안정적인 대 국민 서비스를 보장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그런 제도를 (여러 보수적인 선진국가들처럼) 공무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무원에 대한 보장 제도로부터 불가피하게 (어쩌면 필요악으로서)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 신분보장 및 연금 제도를 시행한 이래로 역사상 단 한번도 공무원들이 무사안일과 복지부동하지 않은 적이 없다. 물론 이러한 속성을 이겨내고 개인적인 성품에 따라 헌신적이고 귀감이 되는 공무원 ‘개인’이 때때로 나온다. 나는 지금 공무원 ‘집단’의 본질적 속성과 성향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들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닌데, 때에 따라서 공무원들의 업무가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기도 하고 이번 사태와 같이 처참한 실패로  귀결되기도 한다. 무엇이 그러한 차이를 발생시킬까?

열쇠는 공무원 집단을 지휘 통제하는 ‘정권’이 쥐고 있다. 우리가 싸잡아 비판하는 ‘정부’에는 권력에 따라 사람이 바뀌며 정부 조직의 상위직을 차지하는 ‘정권’이 있고, 이른바 관료집단이라고도 하는 ‘직업적 공무원’들이 있다. ‘직업적 공무원’들은 전술한 바와 같이 애당초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을 숙명적 속성으로 하고 있다. 그들은 과잉대응해서 생기는 귀찮은 문제를 싫어 한다. 때로는 그러한 과잉 대응으로 인해 그들의 혜택인 보장된 신분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정상적이고 평범한 공무원이라면 최소한 매뉴얼 수준으로는 일하고자 한다. 공무를 매뉴얼 수준으로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무원의 복무규정 위반을 뜻하는 것으로써 역시 그들의 보장된 신분상 혜택을 박탈 당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호 사건 때의 해경 진도관제센터 당직자를 상기해 보시라.) 한편으로는 그들이 (적절한) 매뉴얼대로 대응해야 국가 시책의 일관성과 안정성이 담보되기도 한다.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얼마전부터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유행한 한 신용카드사의 광고장면 속 카피이다. 매뉴얼보다 높은 수준의 (과잉) 대응을 바라보는 직업공무원의 시각을 정확히 대변해 주는 카피가 아닐까 싶다. ⓒ삼성카드 (출처 : youtube.com)

결론적으로 ‘정권’은, 담당 공무원이 때마침 헌신적인 공무원이어서 본인의 인사상의 불이익을 무릅쓰고 국민이 잠재적으로 처할 수도 있는 위험에 적극적으로(매뉴얼에 비하면 과잉으로) 대응해 주는 요행을 바랄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일반적으로 복지부동 성향의 ‘직업적 공무원’들을 이끌고 이들이 올바르고 적절한 매뉴얼을 갖추고 '매뉴얼 대로' 대(對)국민 서비스를 하도록 인사권, 시행령,시행규칙 등을 통해 지휘, 통제해야 하는 것이다. 

위에서 두 번째 문제로 제시한 후진적, 사후약방문적 대응 매뉴얼의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해법이 나온다. 국가적 위기 대응 시나리오를 철저하게 재검증하여, 이러한 어이없는 땜질식 대응이 ‘매뉴얼’을 근거로 시전(施展)되는 후진적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정권'이 '공무원'들을 제대로 지휘, 통제하는 것... 그래서 선진적, 선제적 매뉴얼을 구축하고 국민에게 온전히 서비스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핵심인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듣던 레파토리 아닌가? 한... 1년 전 쯤에?...)

 

국가 재난 관리 체계가 이러한데 세월호 진상규명 요구가 여전히 지겨운가?


그랬다. 사실 우리에게는 1년 여 전에 위와 같은 시스템과 매뉴얼을 갖출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었다. 일부의 일반인을 포함하여 3백여 명 이상의 꽃다운 학생들이 남해 바다에 수장되는 것을 충격 속에 목도하며 온 국민이 통한과 통곡의 눈물을 흘린 댓가로 얻은 기회였다. 어디 이런 기회가 한 번뿐이었으랴마는… 당시에 행정부 수반께서는 참담하게 드러난 대한민국의  재난 대응 능력의 부재(不在)를 보시고, 그 원인을 구시대의 유물인 ‘적폐’에서 찾으셨다. 그리하여 마침내 ‘해경을 해체’하시겠다고 선언하시며 범국가적 재난 대응 시스템을 다시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1년 여 뒤, 오늘을 보라. 신규 전염병이 발병율과 사망자 수에서 세계 선두권을 달리며 국격을 드높이고(?) 있고, 관련 공무원의 안일한 대응으로 이웃 국가에 까지 질병을 수출하시어, ‘더러운 보균국', ‘질병관리 후진국’ 소리 들어가며 비난 받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정권’이 ‘직업 공무원’들을 어떻게 움직이냐에 따라 2000년대 중반 노무현 정권 때의 ‘사스’ 대응처럼 전세계적인 칭찬과 부러움을 받느냐, 아니면 이 정권의 메르스 대응처럼 이웃 국가의 멸시와 조롱과 혐오를 받느냐의 차이가 결정된다.

자, 여전히 세월호 유족들과 일부 사회단체들은 세월호 진상규명 및 온전한 선체인양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아직도 1년 지난 세월호 타령이냐는 분들께 묻고 싶다. 세월호 진상규명 요구(보상 규모를 묻는 게 아니다.)가 지금도 지겨우신가?


궁극적으로 최종 책임은 누가 지는가?


그렇다면 이번 메르스 통제 실패의 최종 책임은 ‘정권’이 지는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름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 책임은 결국 ‘국민’이 지게 된다. 이 글이 결국 비극적 결론을 내는 순간이다. 국민의 책임은 결코 그 정권 창출에 기여하거나 찬성한 국민과 반대한 국민, 별 관심 없던 국민을 가리지 않는다. 비극을 넘어 처참한 결말이 되겠다.

‘정권’은 어떻게든 책임을 다른 데로 돌릴 것이다. ‘공무원’들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이 그들의 본질이듯, ‘정권’의 책임 돌리기 또한 정권재창출을 위한 그들의 본질적 속성이다. 전 정권의 책임으로 돌리든가, ‘세월호’의 유병언같은 이를 찾든가, 여러 방안들이 있을 것이다. 어느 인터넷 댓글처럼 이번엔 질병관리본부를 해체하실까나? 이왕이면 통크게 보건복지부를 해체해 버리실 수도... 뭐 이도 저도 안되면 질병관리본부장이나 보건복지부 장관 경질하는 수준에서 그냥 뭉개든가…. 이 정권에는 무슨 잘못을 해도 괜찮은 지지율 40%짜리 천부(天付) 콘크리트 ‘까방권’이 있지 않은가?

감기 바이러스 등의 대재앙을 다룬 영화 포스터들2차, 3차 감염자 속출, 사망자 연쇄 발생 등 MERS의 공포가 확산되는 가운데, 그동안 감기 바이러스 등을 소재로 다루었던 재난 영화들이 회자되고 있다. (출처 : 쿠키뉴스. http://durl.me/8wgo8g)

국민은 정권에 대한 찬성 여부에 상관없이, 다른 데가 아파도 병원 가면 메르스 옮을까 두려워하면서 메르스 감염자가 있을지도 모를 병원에 가야 하며, 메르스 감염자가 있을지도 모를 버스에 타는 공포의 모험을 감행하는 형태로 책임을 져야 한다.(러시안 룰렛 수준의 스릴과 어드밴쳐를 선사해 주신 대한민국 정부에 감사패라도 드려야 하나?) 차라리 이웃 국가 국민들로부터 받는 멸시와 조롱, 그리고 요우커들이 '더러운 병 옮을까 두려운' 대한민국 관광 대신 '지진 날까 두려운' 일본 관광을 택하는 경제적인 손실 따위는 국민이 져야 할 책임 중에 부차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입에 담고 싶진 않지만, 최악의 경우 도대체 어디서 옮았는지 알 수 없는 메르스로 인해 억울하게 사망해야 하는 형태로 책임을 질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신뢰가 무너져, 사태가 확산될 때마다 나오는 정부의 회의와 대책 자체가 공포와 괴담 수준이기에, 오늘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결국은 국민이 책임지고 있다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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