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명상(冥想)사이]

제 1편 : 인생의 긴 여정을 노래로 되돌아 보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와

미소라 히바리의 「川の流れのように」)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르면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 보고,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좋든 싫든 의미를 가졌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삶이 한 편의 영화처럼 머릿 속을 지나가는 듯 느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불확실하게 '할 것 같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제가 아직 그러한 경험을 해 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대기를 다룬 서사적 소설이나, 일생을 다룬 영화 등 예술 작품속에서 인생의 여정을 마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는 주인공들의 삶에 감정이입되는, 그런 방식의 간접적인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보지 않았을까 합니다.

   여기 그러한 인생의 황혼기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가슴 벅차지만 잔잔하게, 스스로의 인생을 한 곡의 노래로 정리해 표현해 낸 것같은 동·서양의 두 명곡이 있습니다. 하나는 미국 스탠다드 팝 & 재즈 계열의 거봉,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명곡 「My Way」,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일본 쇼와시대를 대표하는 가수 미소라 히바리(美空 ひばり)의 명곡 「川の流れのように(카와노나가레노요-니 : 흐르는 강물처럼)」입니다.

   프랑스 원곡[각주:1]에 유명한 팝가수이기도 한 폴 앵카(Paul Anka)가 작사한 가사를 붙여 프랭크 시나트라가 1968년 말에 녹음하고 1969년 초에 발표한 「My Way」는 폴 앵카가 작사했지만 마치 프랭크 시나트라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덤덤하게 노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오랜 세월 미국인들과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음악생활을 해 온 한 거장의 퇴장을 암시하는 이 곡은 바로 그런 상황의 시나트라가 불렀기에 더 많은 감동을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미소라 히바리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엔카 가수로 알려져 있지만, 스탠다드 팝 & 재즈 계열의 노래도 즐겨 부르던 미소라 히바리는 공연때에 이 「My Way」를 즐겨 불렀다고 합니다. 그녀도 이런 노래를 갖고 싶었을까요? 굴곡진 삶의 여정으로 보자면, 프랭크 시나트라에 비해 몇 곱절 이상이었을 미소라 히바리... 시나트라의 「My Way」가 탄생한 지 꼬박 20년 만인 1988년 말, 아키모토 야스시(秋元 康)가 작사한 「川の流れのように」를 취입하게 됩니다. 이 역시 인생을 구비구비 흐르는 강물에 비유하여 노래한 스탠다드 팝 계열의 명곡으로 미소라 히바리 사후 1990년대에 일본인이 사랑하는 명곡 1위에 오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한국의 미소라 히바리라고 불리우는 이미자 선생이 작곡가 박춘석 선생의 곡을 받아 「노래는 나의 인생」이라는 곡을 1990년대 초에 발표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두 노래에 비해 그 임팩트는 많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지요. 패티김 선생도 이미 은퇴했고... 저는 이제 음악 인생의 황혼을 건 명곡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국내 가수는 조용필만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전히 정열적인 음악 활동을 하고 계시니 먼 미래 이야기지요.

    아무튼, 아홉살 꼬마때 부터 반세기 동안의 히트곡을 집대성한 50여 곡의 베스트 음반을 모두 들은 후, 마지막 곡 「川の流れのように」를 들으며 그녀의 인생사[각주:2]를 다시 생각하며,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났던 미소라 히바리처럼, 조용필도 그 언젠가에는 그런 명곡을 남겨주기를... 그래서 언젠가는 그의 평생 동안의 베스트 음반을 들으며, 그의 인생사를 떠올리며 「My Way」,「川の流れのように」같은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My Way

 

And now, the end is near.
이제 끝이 다가오는군
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
그리고 마지막 커튼도 내 앞에 있어
My friend, I'll say it clear.
내 친구여, 확실히 말해두지
I'll state my case of which I'm certain.
나는 나만이 알고 있는 나의 얘기를 할거야
I've lived a life that's full.
나는 바쁘게 살아왔지
I've traveled each and every highway,
모든 고속도로를 다 달리면서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그리고 더 중요한건
I did it my way.
난 내 방식으로 이걸 해왔다는 거야.

Regrets, I've had a few;
후회, 하기야 했었어
But then again, too few to mention.
하지만, 말할거리가 있을 만큼 후회한 건 없어
I did what I had to do
나는 할일만을 했고
And saw it through without exemption.
그리고 있는 그대로만을 지켜봐왔어
I planned each charted course.
나는 정석만을 따랐고
Each careful step along the byway,
한걸음 한걸음 조심해서 걸어왔고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그리고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건
I did it my way.
난 그걸 내 방식대로 해왔다는 거야

Yes, there were times, I'm sure you knew
그리고 그런 때도 있었지. 아마 너도 알겠지.
When I bit off more than I could chew.
그렇다고 걱정할 만큼 많은 것도 아니야
But through it all, when there was doubt,
하지만 그동안 남은 후회들은
I ate it up and spit it out.
다 씹어버리고 뱉어내었어
I faced it all and I stood tall
그 모든 걸 대면하고 그 앞에 꿋꿋히 섰어
And did it my way!
그리고 그 모든걸 내 방식으로 해왔지

I've loved, I've laughed and cried.
사랑했고, 웃었고, 울었지
I've had my fill my share of losing.
고생도 했고, 쉬엄쉬엄한 적도 있었지
And now, as tears subside,
이제 눈물이 말라가면서
I find it all so amusing.
난 그 모든게 재밌어 보이는 거야
To think I did all that;
그 모든 것을 내가 다 거쳐왔다는 것이
And may I say, not in a shy way,
그리고, 이렇게 말해도 될까,
"Oh no, oh no, not me,
난 안 그랬다고.. 난 당당하게
I did it my way"
내 방식대로 해왔어

For what is a man, what has he got?
남자로서, 그가 가진 것으로서
If not himself, then he has naught.
그 자신이 아니라면,
To say the things he truly feels
그는 그가 진짜 느낀 것들을 말해서는 안 되지
And not the words of one who kneels.
무릎꿇는 자의 목소리로 들려서는 안 돼.
The record shows I took the blows,
세상이 내가 당당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어
And did it my way!
그리고 내 방식으로 해왔다는 것을.
Yes, it was my way...

소스 : gasazip님 블로그

 

川の流れのように
흐르는 강물처럼


知らず知らず 歩いてきた 細く長い この道
그저 모르는채 걸어왔네, 좁고도 긴 이 길을
振り返れば 遥か遠く故郷が見える
뒤돌아보니 저 멀리 고향이 보이네
でこぼこ道や 曲がりくねった道
울퉁불퉁한 길이나 구불구불 굽어진 길
地図さえない それもまた人生
지도 조차도 없는 그것 또한 인생이지
ああ 川の流れのように ゆるやかに
아, 흐르는 강물처럼 느긋하게
いくつも 時代は過ぎて
몇 세대의 시대가 흘러
ああ 川の流れのように とめどなく
아, 흐르는 강물처럼 하염없이
空が黄昏に 染まるだけ
하늘은 황혼에 물들어 갈 뿐이지

生きることは 旅すること 終わりのない この道
산다는 것은 길을 떠나는 것, 끝이 없는 이 길을
愛する人 そばに連れて 夢 探しながら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데리고 꿈을 찾아가면서
雨に降られて ぬかるんだ道でも
비에 맞아 질퍽거리는 길이라도
いつかは また 晴れる日が来るから
언젠가는 다시 맑은 날이 올테니까
ああ 川の流れのように おだやかに
아,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하게
この身を まかせていたい
이 몸을 맡기고 싶어
ああ 川の流れのように 移り行く
아, 흐르는 강물처럼 변해가는
季節 雪どけを待ちながら
계절 눈이 녹는 것을 기다리면서

ああ 川の流れのように おだやかに
아,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하게
この身を まかせていたい
이 몸을 맡기고 싶어
ああ 川の流れのように いつまでも
아, 흐르는 강물처럼 언제까지라도
青いせせらぎを 聞きながら
푸르게 흘러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소스 : amongthespirits님 블로그

  1. 원곡은 1967년 프랑스의 팝인, Claude François의「Comme d'habitude」 (평소처럼)이라는 곡이라고 합니다. [본문으로]
  2. 미소라 히바리의 부친이 김해 출신의 재일한국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유력한 지인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미소라 히바리 본인은 이를 공개적으로 시인한 적이 없습니다. 아무튼 가수의 재능을 보이던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을 겪어야 했고, 본인도 짧은 결혼생활 후 오랜 독신의 외로움을 겪었으며, 1980년대에는 절친한 친구, 남동생, 어머니와 사별하는 아픔을 겪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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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한창 가요와 팝송에 눈떠서 여러 음악을 접하기 시작하고, 카세트테이프나 LP 음반을 구입하면서, 어떤 음반들은 타이틀 곡 한 두곡을 듣고 접은 음반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음반들은 이상하게 전체 앨범을 반복해서 들으며 위안이 되기도 하고, 감동이 되기도 하였으며, 아니 그냥... 그냥 이유 없이 좋은, 듣기 좋은 음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음반이 함께 음악을 듣던 친구들과도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죠. 심지어는 매년 연말마다, 무슨 전문가라는 분들의 조사를 거쳤다는 대한민국 100대 명반이니 하는 발표를 볼 때마다, 천편일률적으로 언더그라운드 포크/락 계열의 음반들 위주로 가득 채워진 명반 순위표를 보면, 내가 좋아하는 음반들과 전혀 관계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나는 발라드도 좋아하고 뽕짝도 좋아하는데...

   생각의 끝에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기호가 달라 알려진 맛집도 내가 가서 먹어보면 별로이듯, 명반(名盤)이 라는 것도 내가 들어서 졸리면 그건 아닌 거다'

   그래서 기획해 봤습니다. 이름하여 '내 맘대로 명반' 시리즈... 연말 100대 명반에 들지 않아도,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명반은 아니더라도... 아니, 심지어는 전문가 혹은 음악 좀 듣는 다는 분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음반일지라도, '내가 듣기 좋고 내가 좋아하면 그게 바로 명반'이라는 생각으로 이 연속 기획 포스팅을 해 나갑니다.

 

[내 맘대로 명반(名盤)] 제 2탄

 

조용필 4집 (1982.05.17)

 

   이 앨범은 제 기억에 1990년대, 2000년대 평론가들의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었던 음반으로 기억됩니다. 당시 소위 '대한민국 100대 음반' 식의 순위를 매기는 행사가 주로 연말에 많이 있었는데요. 평론가들에 따라 이 앨범이 전혀 순위에 들지 못한 경우도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그의 개인 명반 순위 1위에 올려 놓기도 한 그런 음반이었습니다. 이 앨범을 제 두번째 [내 맘대로 명반]에 소개하는 것은 제가 후자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아, 물론 이 앨범이 제 No. 1 이라는 이야기까지는 아닙니다.)

조용필 4집 앨범 재킷 전면조용필 4집 앨범 재킷 전면입니다. (원본 : maniadb.com)

   당시, 조용필의 음반을 이런 순위에 넣는다면, 1집 한 장, 더 들어가면 7집 정도까지만 꼽는 분들이 많았어요. 1집은 조용필이라는 가수를 1980년대를 규정하는 상징적인 대중음악가로 각인시키고, 1980년대의 대한민국 음악 조류의 방향을 설정하게 했다는, 대중음악사에서의 '기념비적인' 위상때문이겠지요. 그런가하면, 7집은 비로소 조용필이라는 가수가 '트로트'라는 굴레를 벗어나, 음악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록 장르를 온전히 전면에 내세운 앨범이라는 점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당대 평론가들이 중시하던 요소들인 대중음악사에서의 위상, 장르적 일관성 등을 이 4집 앨범은 갖추지 못하였지요. 그런데 오히려 저는 그런 이유로 이 앨범이 명반에 오를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앨범은 동요에서부터 록, 발라드, 성인 가요(어덜트 컨템퍼러리) 뿐만 아니라, 트로트, 심지어는 민요(라이브 메들리)까지 담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봅시다. 이렇게 앨범을 구성하고 싶은 건 차치하고, 이렇게 앨범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대중가수가 있(었)는지를...

   이 앨범이 발매될 무렵의 조용필이라는 가수는 5세 꼬마들부터 7~80대 어르신들까지 대한민국의 전 세대를 아우르며 사랑을 받는 절대적인 위상을 가진 가수였습니다. 이런 가수는 그 전에도 나오기 힘들었을뿐 아니라, 음악적 취향의 분화가 심해지는 요즘 세대 이후 앞으로도 거의 절대적으로 나오기 어려운,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가수였던 것이죠. 마찬가지 이유로 이런 전 세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의 수록곡을 담아낼 수 있는 이런 4집과 같은 음반은 대중음악사에 전무후무할 것입니다.

   조용필은 이 앨범을 기획하면서, 이렇게 전 세대를 아우르는 곡들을 골고루 수록하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조용필에 빨대 꽃고 있던) 지구레코드사의 트로트에 대한 요구는 집요했겠지요. 트로트 장르가 음반 판매량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던 시대였으니까요. 조용필은 전작 「고추잠자리」에서의 대중적인 성공으로 음반사 측의 이러한 요구를 최소화 시켜가고 있었고, 이 앨범에서는 트로트 넘버를 「보고 싶은 여인아」라는 곡 하나만 수록합니다. 이 곡은 어덜트 컨템포러리 계열의 리메이크곡 「산장의 여인」, 우리 민요를 '위대한 탄생'과 함께 접속곡으로 연주한 라이브 「민요메들리(81 해운대 비취페스티벌 실황)」과 함께 당시 어르신들의 귀를 즐겁게 해 드리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엄청난 유지비가 들어가는 당대 최고의 세션 밴드 '위대한 탄생'의 당시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민요 연주였습니다. 팔순 잔치에 내놔도 손색없는 밴드였죠.)

   반면, 파격적으로 동요를 트랙에 수록하기도 하였습니다. 바로 한정동 작시 윤극영 작곡의 「따오기」인데요. 당시는 신군부의 정책상 의무적으로 (다른 사람이 부른 곡이라도) 건전가요 1곡씩을 넣어야 했던 시절입니다. 조용필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는데요. 그는 3집의 「오빠생각」과 똑같은 방식으로, 이 4집에서도 '건전가요의 참신한 역발상'을 시전합니다. 바로 이 건전가요를 직접 불러, 어린이들을 위한 트랙으로 활용한 것이지요. 역시, 파격적 수록곡인 '어린이(를 위한) 가요' 개념의 「난 아니야」와 함께 당대 어린이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따오기」가 유아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반면, 소녀 취향의 곡 「난 아니야」는 청소년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어릴 적 초등학교 같은 반 여자 아이가 교우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에, 이 「난 아니야」를 불렀던 기억이 새삼 떠오르네요.

   또한, 전 계층을 타깃으로 하는 대중성을 지닌 (초기) 발라드 계열의 노래들도 갖추어 놓았는데, KBS2 TV 동명의 드라마 주제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록발라드 넘버 「꽃바람」도 수록해 놓았으며, 4집 앨범하면 「못찾겠다 꾀꼬리」와 함께 대표곡이 된 「비련」이 있었습니다. 이 「비련」은 앨범의 거의 끝[각주:1] 부분에 수록되어 있고, 4집 프로모션에서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았지만, 워낙 조용필의 가창력이 돋보이고, 노래가 좋아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5집이 발매되고 난 뒤에 전국민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아, 오히려 5집의 팝락 계열의 타이틀곡 「나는 너 좋아」 프로모션에 방해가 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요즘 말로 '차트 역주행'을 했다고 할 수 있지요. 바로 그 '기도하는~ (꺄아아아악~)'이 제목보다 더 유명한 그 곡입니다. (「비련」에 관하여는 조용필의 사람됨을 알 수 있는 감동적인 일화가 있다고 하는데요. 이 글의 작성 방향과 맞지 않아 링크로 대신합니다. 꼭 한 번 읽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왜 조용필이 단순히 한 시대를 풍미한 딴따라가 아닌 존경받아야 할 시대의 귀감이자 아티스트인지를 알려 줍니다.)

조용필 4집 L/P 앨범 재킷 뒷면조용필 4집 L/P 앨범 재킷 뒷면입니다. (원본 소스 : maniadb.com)

   이렇듯 조용필 4집의 '버라이어티'는 앨범의 흠결이 아닌, 조용필만이 가능한 능력의 발휘였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이 음반의 개별 수록곡들이 가지는 음악적 성취와 사회적 메세지입니다.

   조용필은 이 앨범에 그의 밴드 '위대한 탄생'과 함께 「자존심」이라는 록 넘버를 수록하는데, 이 곡은 서양에서 넘어온 록이라는 장르가 조용필이라는 한국의 로커를 만나 (단순한 서양 록의 흉내가 아니라) 어떻게 '한국의 록'으로 거듭나는가를 들려 줍니다. 음악의 기초 골격이라고 할 수 있는 드럼의 비트부터가 다릅니다. 아니, 차라리 「자존심」의 드럼은 '비트'를 치지 않고 아예 '(굿거리)장단'을 두들기고 있습니다. 마치 꽹가리로 드럼의 하이햇을 대신 연주하고 있나 착각하게 되죠. 여기에 국악에서 차용한 한국적 락 멜로디를 접목하여 서양의 록 사조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사운드를 들려 줍니다. 조용필의 탁성은 1집에서 「대전브루스」를 재취입할 때 썼던 탁성(저는 사실 이 곡의 탁성을 일본 엔까 냄새가 나는 것 같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과는 다른 '판소리적' 매력을 발산합니다. 한 곡 안에서 탁성, 가성, 본성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의 보컬은 쉽사리 흉내내기 어려운 경지에 도달해 있음을 알려주지요. 그리고, 엄청난 대중적 사랑을 받은 타이틀 곡 「못찾겠다 꾀꼬리」는 경쾌한 팝락 계열의 음악임에도, 그 장르가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한국적 정서가 뿜어져 나오는 곡입니다. 역시 우리 '장단'에 베이스 리듬을 두고 있기 때문이죠. 어른들의 '동심'에 대한 추억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가삿말이 조용필의 진성, 두성, 가성과 어우러져 어린이, 젊은이들뿐 아니라, 장년층에 까지 고른 사랑을 받았던 곡입니다.  이 두 곡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한국적 록' 음악이 완성단계에 와 있음을 알려 주는 곡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4집 앨범의 가치를 이야기하며, '사회적 메세지'를 들었을 때, 혹자는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황당해 할 수도 있겠습니다. 당연합니다. 사실 그 담고자 했던 사회적 메세지는 당시 서슬퍼런 신군부의 5공화국 치하 공연윤리위원회의 숱한 '가위질'로 인해 훼손되고 도저히 원 뜻을 알 수 없는 상징과 은유로만 채워졌다고 하니까요. 이제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바로 「생명」이라는 곡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앨범이 준비되던 1982년 초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은지 채 2년이 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TV와 신문에서는 '북괴 간첩과 용공분자들이 사주한 광주폭동'을 우리 군 공수부대 등이 '진압'에 성공한 것으로 보도하던 시절, 그 진상(眞狀)은 당국의 눈을 피해 비공식적인 유인물, 영상 등으로 몰래 전해지던 시절이었다고 하죠. 당시 조용필은 '광주학살'의 실상(實狀)을 전해 듣고 그 분노를 노래로 표출하고자 합니다. 그는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부르던 전옥숙 여사와 함께 (김지하씨의 글로 알려진) '생명'을 가사로 다듬어 곡을 만들고 취입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공연윤리위원회의 반복되는 심의 반려로 인해 전옥숙여사가 가사를 대폭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김원중의 「바위섬」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는 아무도 그 참뜻을 알 수 없었을 것은 당연했습니다. 알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은 (작사/작곡자를 제외하고) 아마 김지하씨 밖에 없었겠지요. 김지하씨가 옥중에서 이 노래를 듣고, '조용필이란 놈이 어떤 놈인지 궁금해 했다'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고 합니다.[각주:2]

   이제 정리를 위해 요약하자면, 조용필 4집이 가지는 의의는 각 수록곡이 가지는 음악적, 사회적 가치들과 함께 조용필만이 할 수 있는 전 세대를 아우르기 위한 전 장르에 대한 커버리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그 장르적 다양성으로 인해 희생될 수 밖에 없는 가치가 바로 특정 장르에 대한 일관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단적으로 말해, 전 세대를 만족시키려고 했지만, 결국 아무 세대도 만족할 수 없는 최악의 '짬뽕' 앨범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조용필도 아마 그러한 고민들을 했을 것이고, 그 고민의 결과물이 바로 록과 발라드 음악을 위주로한 젊은 층을 위한 앨범인 7집과, 어르신들을 위한 트로트와 어덜트 컨템포러리를 메인으로 하는 8집이라는 명반들로 나타났을 것입니다. 비슷한 시기 함께 기획되어, 약 반 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연달아 발표된 이 두 앨범에서 본인이 작곡에 집중한 「어제, 오늘 그리고...」, 「미지의 세계」 「여행을 떠나요」로 젊은이들의 열광을 얻고, 명망있는 작사/작곡가들에게 작품을 부탁한 「허공」,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겨울의 찻집」으로 중 장년층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이 두 앨범들도 언젠가 제 포스팅에 소개가 될 날이 오겠지요. [내 맘대로 명반]이니까요.

 

트랙 정보

(CD 수록 순서에 따름)

1982년  5월   17일 발매 정규앨범
LP 지구레코드 JLS 120-1706
CD 지구레코드 JCDS 0092

녹음기사 이태경
Guitar 곽경욱 / Drums 이건태 
Moog & Piano 김청산 / Bass Guitar 김택환 

 

1. 못 찾겠다 꾀꼬리

작사 : 김순곤, 작곡 : 조용필

 

2. 생 명

작사 : 전옥숙, 작곡 : 조용필

 

3. 꽃바람

작사 : 양근승, 작곡 : 조용필

 

4. 따오기

작사 : 한정동, 작곡 : 윤극영

 

5. 난 아니야

작사 : 김순곤, 작곡 : 조용필

 

6. 보고 싶은 여인아

작사 : 임석호, 작곡 : 임석호

 

7. 자존심

작사 : 조종순, 작곡 : 조용필

 

8. 산장의 여인

작사 : 반야월, 작곡 : 이재호

 

9. 비 련

작사 : 조용필, 작곡 : 조용필

 

10. 민요 메들리

새타령 / 남원산성 / 성주풀이 / 진도아리랑

 (1981 해운대 비취페스티벌 실황) 

 

(원본 소스 : choyongpil.net)


  1. 조용필 4집 앨범 트랙의 배열 순서는 당초에 나온 L/P, 카세트테이프와 나중에 나온 CD가 차이를 보입니다. L/P, 카세트 테이프에서는 「비련」이 「자존심」뒤의 B면 세 번째 곡임에 반해, CD에서는 「산장의 여인」의 뒤에 나오는 아홉번째 트랙입니다. [본문으로]
  2. 강준만 著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4 :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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